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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9년 이전의 원조상황

Pol Pot 시대의 국토 황폐화 이후에 베트남에 의하여 세워진PRK(크메르 인민공화국)은 UNICEF, ICRC, OXFAM 및 기타 긴급 계획 담당 기관 등과 원조에 관한 실무 계약을 체결하였다. 동시에 태국 국경의 난민촌에 있는 수십만의 난민에 대한 대규모 구호사업이 집행되었다. 엄청난 파괴의 현장을 보고서 지원자들은 이 기간 동안 필수적인 복구 요소를 포함한 다방면의 긴급 대책을 협의하였다.
ICRD, UNICEF, WFP, FAO 및 주 NGO 연합들은 트랙터로부터 산업 시설, 수송 수단까지 포함하여 부속품 등의 원조, 기본 의약품에서 병원 기자재, 연필과 공책에서 타자기에 이르기까지 총 망라하여 광범위한 원조를 제공하였다. 국제 사회는 전국적 복구를 위하여 긴급 대책회의를 수시로 소집하였다. 1979년에서 1981년 사이에 공식적으로 "국제긴급대책위원회"는 캄보디아에 370만불을 원조하였다. 이때 소련은 별도로 300만 불을 원조하였다. NGO 단체에서도 100만 불을 원조하였다. 1981 - 1989년 사이 원조 정책은 그 당시 국제적 냉전 관계로 정치적 난관에 봉착하였는데, 그것은 소련 권에서 중요한 복구의 원조, 군사원조 및 PRK에 대한 융자 형태의 자금지원 등이었으나 서방국가측의 원조는 적대 관계로 인하여 미미하였다. 그럼에도 이러한 동구권의 원조는 1983년에 8500만 불에 상당하였고 1990년도 경에는 1억2천만 불에 달하였다. U.N. 기구의 원조는 크게 위축되어 1980년 중반에는 겨우 7백만 불에 머물렀다.
NGO는 복구 사업 과정에서 서방 원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U.N.보고에는 NGO의 확장이 12개국으로 늘고 1984년에 원 금이 2백만 불로 집계되었다. 1990년대에 NGO는 25개국으로 늘고 년간 1500만 불을 캄보디아에 원조하였다. 서방 원조 국, 일본, 중국 그리고 아세안 국들은 그들의 정책을 캄보디아 고립정책에서부터 변환하여 캄보디아 난민의 제3국 정착 알선과 제3국 정착을 못한 태국 국경의 난민촌에 있는 375,000명의 난민에 대해서는 필수품을 공급하였다.

2. 1989 - 1992년간 현장조사 작업의 필요성

캄보디아의 내전 종식과 베트남 군의 철수가 예상됨에 따라 몇몇 국가와 국제기구들이 프놈펜에 사무실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UNDP가 1989년에 연락 사무실을 열고 쌍무국 대표 및 쌍무 접촉단이 외교관계에 따라 여러 형태의 대표단으로 구성되어 단계적으로 들어왔다. 대부분의 그러한 단체들이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한 정보가 매우 부족하였으므로 긴급히 무엇이 필요한지를 체계적으로 조사를 해야만 할 필요가 생겼다. 이 후 2년간 많은 기술진과 계획 팀들이 방문하였다. 쌍무 대표단들이 호주,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도착하였다. UNDP만도 7개의 기술단을 이 기간 내에 파견하였으며 그 중 3개 단은 캄보디아의 부서진 기간 산업의 조사에 헌신적으로 일하였다. 평화협정 내용을 집행하기 위한 임무로 온 U.N.대표들은 U.N.의 캄보디아 특별 대표단 사무국에서 지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