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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교관계 현황 ㅇ 외교관계 수립국: 우리나라를 포함 108개국과
외교관계
ㅇ 재외공관 운영현황: 총 26개 공관
- 대사관(19개): 미국, 일본, 중국, 태국, 독일, 호주, 베트남, 인도네시아, 쿠바, 러시아, 인도, 프랑스, 북한,
라오스, 필리핀, 싱가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미얀마
- 대표부(1개): U.N
- 총영사관(6): 호치민, 홍콩, 상하이, 광조우, Arainh(태국), Klorng Yai(태국)
ㅇ 외교단 접수현황 : 총 25개국 공관 상주
- 대사관(24): 한국,베트남, 말타, 중국, 독일, 프랑스, 영국, 호주, 러시아, 라오스, 필리핀, 싱가폴, 카나다, 태국,
일본, 미국, 북한, 쿠바,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인도, 브루나이, 미얀마, 폴랜드
- 대사 대리급(1) : 불가리아
ㅇ 기타 UN기구 사무소 상주
2. 주요 외교문제 현황
가. 주유엔 대표권 회복
① 제52차 유엔 총회에서의 대표권 문제
ㅇ 1997.7월 사태 이후, 주유엔 캄보디아 대표부에는 Funcinpec 소속의 Sisowath 대사와 CPP 소속의 Ouch
Borith 차석대사간에 대표권 문제로 분쟁이 있어왔음. 캄보디아 정부가 Sisowath대사를 임기가 만료되었다는 이유로 본국으로
소환 명령을 낸 후에도 유엔 사무국과 각국은 누가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혼란을 빚어왔음.
더구나 라나리드 왕자가 1997.9.16부터 개최될 제 52차 유엔 총회에 참가하여 연설을 하겠다고 신청해두고 있는 상황이라
누가 캄보디아를 법적으로 대표할 것인가 하는 것이 관심이 되어왔음. 유엔에 대한 국가의 대표권 문제는 기본적으로 국가 수반이
결정하고 유엔의 신임장 위원회가 심의를 하게 되어있음
ㅇ 시하누크 왕은 최근까지 법적으로는 라나리드 왕자가 아직도 제1총리임을 확인하여 왔으며, 자신은 Ung Huot 외무장관을
또다른 제1총리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해왔음. 그러나, 1997.8월 Ung Huot, Hun Sen총리의
북경 방문시, Ung Huot 총리의 자리를 제1총리의 지위에 맞게 배열하는 등 실질적으로는 그 지위를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이중적 태도를 취하여 왔다는 평가를 받아왔음
ㅇ 1997.9.2 시하누크 왕은 라나리드 왕자를 제외하고 Ung Huot, Hun Sen 총리를 유엔 총회 캄보디아 수석 대표로
임명하는 신임장에 서명하여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냈음. 한편, 왕은 1997.9.5자 라나리드 왕자앞 서한에서 자신이 국내에 머무르고
있는 이상 정부와 국회에서 의결된 사항에 서명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임을 이해하여 달라고 양해를 구하였음
ㅇ 이로써 캄보디아 정부의 유엔 총회 대표권 문제는 일단락 되었으나, Ung Huot, Hun Sen이 유엔에서 캄보디아 정부의
정통성 있는 대표로 인정 될것인지 여부는 유엔 신임장 위원회의 토의를 거쳐 결정된 바, 제52차 UN 총회에서 캄보디아 의석은
결석된 것으로 해결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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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캄보디아 주 유엔 대표권 회복
ㅇ 1998.12.4 유엔 신임장 위원회는 캄보디아 정부가 1998.12.2 제출한 신임장을 심사후 동 신임장을 만장 일치로
승인함. 신임 주유엔 캄보디아 대사로는 98.7월 사태 이전 유엔 차석 대사였던 Ouch Borith가 임명되었음.
ㅇ 캄보디아 유엔 대표권은 1998.12.7 총회 본 회의에서 신임장이 승인된 직후 회복되었으며, 캄보디아 외무장관 Hor Namhong은
동일 본회의에서 캄보디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기여한 유엔 및 관심국들의 역할에 사의를 표명하고 유엔 인권 센터의 캄보디아내
임무 연장등 캄보디아에서의 유엔 활동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요지의 연설을 행함.
나. ASEAN 가입
① 캄.ASEAN 관계 일지
ㅇ 1994년 이래 옵서버 지위
ㅇ 1995년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 회원국
ㅇ 1996.4월 정회원국 가입 신청서 제출
ㅇ 1996.11월 ASEAN 정상회담 결과, 라오스, 미얀마와 동시가입 원칙 결정
ㅇ 1997년중 가입 검토
- 일정기간 유예를 거쳐 AFTA 관세율 적용, 회원국에 대사관 설치, 기탁금 예치등 캄보디아로서는 기술적 준비를 완료하였다는
입장
- 일부 회원국이 캄보디아의 국내정세 불안정, AFTA에 따른 의무이행 능력등에 의구심을 표명
□ ASEAN 가입 연기
ㅇ ASEAN은 1997.7.10 캄보디아의 국내문제를 간섭하거나 어느 일방을 지원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당초 1997.7.23
예정되었던 캄보디아의 ASEAN 가입을 무기 연기함
ㅇ 제1차 ASEAN의 TROIKA 외무장관(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의 훈센 수상과의 회담(1997.7.19)
- Alatas 인니 외상은 시하누크 왕과 라나리드 왕자도 ASEAN의 중재 노력을 환영한 바, 훈센 수상의 동참을 요망
- 이에 훈센 수상은 금번 무력 충돌사태는 국내 문제로서 ASEAN의 간섭은 종래의 내정 불간섭 원칙에 어긋나는 것임을 이유로
ASEAN의 중재 노력 반대
ㅇ 제2차 ASEAN TROIKA 외무장관의 훈센 수상과의 회담(1997.8.2)
- 정파간 적대적인 행위 중지, 폭력 사용 억제, 모든 해외도피 정치인 및 고위 공직자의 안전한 귀국 보장 등을 약속
- 캄보디아 정부는 1998.5.23 예정된 총선에 모든 정당과 정파(K.K제외)가 자유롭고, 공정하고, 신뢰 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선거를 실시할 것을 약속
- 캄측은 ASEAN 가입문제 관련, 그 모든 권한을 ASEAN에 일임하였음. 그러나 빠른 시기에 가입을 희망함.
□ 캄보디아의 ASEAN 가입
ㅇ Hun Sen 총리는 1998.12.15-16간 하노이에서 개최된 ASEAN 정상회담을 통해 캄보디아가 ASEAN 정회원국이
된것으로 간주한다 하고, 캄보디아의 ASEAN 가입을 결혼에 비유, 결혼식은 준비되었으나 결혼 등록만 남았다고 12.16 언급함.
ㅇ 제6차 ASEAN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하노이 선언"에서 ASEAN 정상들은 캄보디아의 10번째 회원 가입을
결정하고, 캄보디아의 회원 가입 특별 행사를 하노이에서 개최키로 발표함. 연이나, 동 특별행사 개최일은 명시하지 않은 바, 이에
대해 ASEAN 외무 장관들은 캄보디아 연립정부 구성 관련, 여.야간 합의한 국회 상원 설치 문제가 향후 캄보디아의 정치 안정과
연계되어 있음을 감안, 국회 상원 설치 문제 타결 시기가 캄보디아의 ASEAN 가입 행사일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함.
ㅇ 동 가입 행사 시기 관련, Surin Pitsuwan 태국 외무 장관은 ASEAN 상임위원장(싱가폴 외무장관)이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시기에 ASEAN 외무장관들과의 협의를 거쳐 논의될것이라고 말하였으며, Domingo Siazon 필리핀 외무장관은
캄보디아의 ASEAN 가입 행사일은 캄보디아의 상원 설치등 국내 조치 이행 관련, 캄보디아측 사정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고 언급함.
ㅇ 1999.4.30 하노이에서 ASEAN 10개국 외무장관 초청, 캄보디아의 ASEAN 정식 가입 행사 개최
다. 크메르 루즈(KR) 지도자 재판 문제
ㅇ97.6. KR 내부붕괴 진행중 라나리드, 훈센 양 총리는 KR재판 실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UN에 요청
-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재판정 구성, 적용 법률등에 대한 UN/캄보디아간 협의 지속
ㅇ2001.8.KR 지도자 재판을 위한 "특별법정 설치법안"이 최종 성립
ㅇ2002.2.8 UN, 특별법정 구성을 위한 4년 반에 걸친 캄보디아 정부와의 교섭 중단 발표
- 특별법정 구성시 캄보디아 국내법 적용(국제기준 충족 여부) 문제가 주요 쟁점
A. 고대 - 앙코르 왕조(~ 1863)
ㅇ 1-6세기경까지 메콩 델타 유역을 중심으로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은 Fu Nan 왕조와 Chen La 왕조가 존재
- 산스크리트어를 도입, 크메르 문자로 발전시켰으며, 카스트제도는 정착되지 않는 등 인도문명을 선별적으로 수입, 정착
ㅇ 802년 Jayavraman 2세가 스스로를 神王으로 칭하고 앙코르 왕조를 열어 1431년 샴의 침략으로 쇠퇴할 때까지 크메르
민족의 전성기 구가
- 베트남 남부, 라오스, 미얀마 , 태국 일부를 포함하는 대제국을 형성, 앙코르와트와 수많은 사원과 뛰어난 관개시설등 세계적
문화유산을 남김
ㅇ 1431년 샴의 침략 후,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기까지 샴과 베트남의 지배를 번갈아 받으며 왕국의 명맥만 유지,
사실상 몰락
- 베트남은 캄보디아의 모든 문화를 베트남식으로 바꾸어 놓으려고 시도함으로써 캄보디아인의 증오 촉발
B. 프랑스 통치시대(1864~1940)
ㅇ 1864년 캄보디아는 샴과 베트남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자진하여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편입
ㅇ 1884년 Norodom왕은 프랑스의 강압으로 명목상의 왕위만 유지하고 통치권을 프랑스에 넘겨주는 협정에 서명
- 프랑스는 식민지 지배과정에서 현지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불어나 프랑스식 이념을 전파하지 않는 대신, 베트남인을 데려다 식민통치의
도구로 사용
- 캄보디아는 후방의 물자지원 기지화하고, 캄보디아인은 종속적인 지위로 전락(1945년 프놈펜 인구의 절반이 베트남인), 캄보디아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배태
C. 시아누크 왕정(1941~1970.2)
ㅇ 1941년, 프랑스는 조종이 쉬울 것으로 생각되는 19세의 Norodom Sihanouk를 아버지 Norodom Suramarit
대신 왕으로 즉위 시켰으나, 시아누크는 1945년 일본의 후원하에 독립 선언
ㅇ 일본 패전 후, 프랑스가 지배권을 회복하였으나, 1953.11월 군사, 사법, 외교권을 시아누크에게 허용, 사실상 캄보디아
독립
- 1954년 인도차이나 문제에 대한 제네바 회의에서 독립 보장
ㅇ 1955년 시아누크는 아버지에게 왕위를 양위, 본인은 선거를 통해 총리 로 취임, 1960년 부친 사후 국가수반직 회복
ㅇ 독립직후, 프랑스 유학파 지식인 계층 귀국(Salth Sar: 후에 Pol Pot로 개명, Ieng Sary, Khieu
Samphan), 1963년 학생시위 후 시아누크의 대규모 좌익 숙청으로 지하조직화
ㅇ 1965년 월맹에게 캄보디아 동부지역 보급로 설치 허용, 미국은 월남전을 캄보디아까지 확대
- 1969.3.18 비밀리에 캄보디아 영토 폭격 개시, 1970.5월까지 B-52기 총 3,630회 출격
- 1973.8.15까지 미국은 총 54만톤의 폭탄 투하(2차 대전 전 기간 중 일본에 투하한 규모의 절반), 이로 인한 사망자는
약 80만명으로 추정
- 월맹은 캄보디아 영토내 더 깊숙히 잠적, 보급기지 설치, 전쟁확산
D. 크메르 공화국(1970.3~1975.4)
ㅇ 시아누크 왕 외유 중 1970.3.28 Lon Nol 장군 쿠데타 성공, 4.10 공화국 수립 (Khmer Republic)
선포
ㅇ 론놀 치하의 공화국은 반정부 세력을 공산주의자로 탄압, Khmer Rouge의 성장배경 제공
- 베트남인 대량학살로 크메르루즈와 베트남의 합작을 초래, 대도시의 절반 이상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 공산주의자들은 국민적 인기와
영토에 대한 통제력 획득
- 1975.4.12 미국, 캄보디아 철수 완료
E. 민주 캄푸치아 (1975.4~1978.12)
ㅇ 1975.4.17 크메르루즈, 프놈펜 입성, 급진혁명 추진
- 1976.1.5 민주 캄푸치아(Democratic Kampuchea) 선포
- 도시 疏開, 농업에 강제노동 투여, 화폐.의료.교육.통신 완전마비
- 통치 3년 8개월간 기아, 질병, 강제노동, 처형 등으로 인한 사망자 170만 내지 300만 명으로 추정
ㅇ 1978.12 베트남 캄보디아 침공
F. 캄푸치아 인민공화국(1979.1~1989.10)
ㅇ 1979.1 베트남군 무력으로 캄보디아 점령, 크메르루즈내 친베트남 세력인 헹삼린, 훈센을 세워 괴뢰정권(캄보디아 인민민주주의
공화국) 수립
ㅇ 1982년, 시아누크, 손산, 크메르루즈 반베트남 연합전선 구축
- 망명정부 '민주캄푸치아 연립정부' 구성, 유엔의석 확보
ㅇ 1989.10 소련 및 동구권 몰락과 캄보디아 운영의 경제적 부담, 국제사회의 비난에 따라 베트남군 철수
G. 캄보디아국 수립(1989.4~1993.5)
ㅇ 1989.4 캄보디아 공산당은 국명을 State of Cambodia로 개칭, 탈 공산주의 추진 (당명도 캄보디아 인민당
CPP: Cambodian People's Party로 개칭)
- 투표에 의한 의회구성
- 사유재산 인정, 민영화 추진
- 형법등 각종 법령 정비
- 1991.10월 전당대회에서 Chea Sim을 총재, Hun Sen을 부총재로 선출
ㅇ 1990년 UN안보리, 포괄적 캄보디아 평화안 채택
ㅇ 1990.10월 자카르타 비공식회의에서 4개 정파간 SNC(Supreme National Council of Cambodia)
설치 합의
- 시아누크의 FUNCINPEC, 시아누크 왕정에서 총리를 역임한 손산의 KPNLF(Khmer People's National
Liberation Front), 크메르루즈, CPP 등 4개 정파간 합의
ㅇ 1991.10 파리 평화협정 서명(Agreement on a Comprehensive Political Settlement
of Cambodia Conflict)
- 참여국 :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ASEAN 6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일본, 호주, 카나다, 인도, 유고 등
19개국 참가(프랑스와 인도네시아가 공동 주재)
- 시아누크 왕 지도하에 UNTAC(UN Transitional Authority of Cambodia)와 SNC에 18개월간
통치권을 위임, 신정부 구성 추진
- 1992.3월 45개국 22,000명으로 구성된 유엔사상 최대 규모의 평화유지군 파병, 정전협정 준수 여부 감시
H. 제1차 총선 및 정부 수립(1993.5~1998.7)
ㅇ 1993.5.23-28간 UNTAC 주관하에 총선거 실시
- 470만명 유권자 등록, 90% 투표 참여
- 민족연합전선(Funcinpec) 45.47%, CPP 38.23%, 불교자유민주당 (BLDP) 3.8% 획득, 각각 국회
120개 의석중 58, 51, 10석 차지, 군소당 Molinaka가 1석 차지
- Khmer Rouge는 Cambodian National Union Party를 구성 하였으나, 선거 불참
ㅇ 1993.6.14 제헌의회, 시아누크를 국가수반으로 선출
- 7.2 Funcinpec의 Ranariddh 총재와 CPP의 Hun Sen 부총재를 캄보디아 임시정부의 공동 총리(Co-Prime
Minister)로 임명
ㅇ 1993.9.23 헌법 공포, 9.24 시아누크 왕 즉위, 라나리드와 훈센을 Co-Prime Minister로 임명하고,
중앙 및 지방의 모든 권력을 분점하는 독특한 연립정부 구성
ㅇ 1993.11.15-12.31간 UNTAC 요원 철수완료
ㅇ 1994.7.2 Chhakrapong 전 부총리와 Sin Song 전 내무장관이 정부의 대크메르루즈 유화정책에 불만을 품고
쿠데타를 기도하였으나 실패, 해외로 도피하고 여타 주모자는 체포
- 차크라퐁 왕자는 라나리드 총리의 이복형으로서 CPP 소속, 1994.10월 궐석재판에서 20년형 선고
ㅇ 1995.11.21 시아누크 왕의 이복 동생으로 Funcinpec 소속이며 외무장관을 역임한 Sirvudh 공이 훈센 총리
암살미수 사건에 연루, 체포되었으나, 시아누크 왕이 훈센 총리에게 간정, 프랑스 망명 허용
- 시리부드 공은 1996.4월 궐석재판에서 징영 10년형 선고
- 1996년말 및 1997.4월 귀국을 시도, 양당간 무력시위 등 위기 상황 초래, 귀국 시도 좌절
ㅇ 1997.1-2월 라나리드 총리, 민족연합전선(FUN) 구성을 주도, 2.27 공식 출범, 연립정부의 일체성을 훼손하였다는
일부 비난
- KNP, BLDP 일부 참여, DNUM은 초청을 받았으나 불참
ㅇ 1997.1월 이래 훈센 총리도 군소 정동과 제휴협정 추진
- 10여개 군소 정당과 제휴
ㅇ 1997.2월 북부 Battambang 지역에서 정부군내 양 정파간 무력 충돌로 50여명 사망
ㅇ 1997.3.30 KNP의 국회의사당 앞 시위도중 수류탄 4발 투척사건 발생, 최소 17명 사망, 150여명 부상
ㅇ 1997.4.15 Funcinpec 소속 내각실 장관 Ung Phon, 베트남 저항 전쟁의 영웅인 Siem Riep 주지사
Toan Chay 등 당내 일부 중진 인사, 라나리드 총재의 독선적 당 운영에 불만, 총재에 대한 불신임 선언
- Ung Phan을 포함, 국회의원 8명이 반라나리드 선언에 동참
- 반라나리드 선언 인사들은 당을 탈퇴하지 않고 총재 교체를 요구, CPP는 이들에 대한 지지 선언
ㅇ 라나리드 총리는 훈센이 자신의 당내 반란을 배후 조종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등, 1997.4월 이래 국회활동이 중단되고 양
총리간 무력시위가 격화되는 등 1993년 정부수립 이후 치안상태 최악
ㅇ 1997.7.5-7.6간 훈센 제2총리와 라나리드 제1총리간 무력 충돌 사태 발생
I. 제2차 총선 및 정부 수립(1998.7~2003.7)
ㅇ1998.7월 제2차 총선 실시
- 선거 결과 CPP 65석, Funcinpec 43석, Sam Rainsy당(SRP) 14석 획득
ㅇ1998.11.30 훈센 제2총리는 정치 라이벌인 라나리드 왕자를 국회의장에, 자신은 단독 수상에 취임하는 신정부를 출범,
최초로 캄보디아 전역을 중앙 행정력으로 통제하는 통치권 장악에 성공함.
- 양당간 50/50의 권력 배분 원칙에 따라 연립정부 구성
ㅇ1999.3 국회를 상.하 양원으로 구성하는 헌법개정과 1999.4월 캄보디아의 ASEAN 가입으로 국내 정치 안정과 국제사회에의
복귀를 통한, 국정 개혁과 경제발전을 추구
ㅇ 2000.11.24 반정부단체에 의한 국방부, 관방부 등 정부시설 점거 기도 사건 발생, 반정부단체 행동대원 7명 등 8명
사망ㅇ 2002.2.3 Commune 선거 실시
- 총 1,621 개 Commune 단체장중 CPP가 1,597명 Funcinpec 10명, Sam Rainsy가 13명 차지
- 집권 CPP는 98년 총선시 득표율보다 약 20%가 증가된 총 60%이상의 유효득표를 획득
- Funcinpec은 98년 총선 득표율보다 약 10% 감소되어 세력이 약화되었으며, 야당인 Sam Rainsy는 프놈펜
Commune 단체장 6석 획득 등 수도권에서 강세
ㅇ 2002년에 들어서도 대내적으로는 2월의 지방선거, 대외적으로는 2002.11월 제8차 ASEAN 정상회의 및 2003.6월
제10차 ARF 및 ASEAN PMC 등을 성공적으로 치루어 내면서 국내외적인 안정과 발전을 이룩
- 훈센 총리는 첫째 평화정착 및 국내정국 안정, 둘째 국제사회에의 편인, 셋째 경제개발 및 개혁을 통한 빈곤타파라는 "Triangle
Strategy" 정책 기조하에, Funcinpec과의 마찰없는 연정 유지, ASEAN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 및 WTO
등 국제기구 가입 및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의 개혁정책을 추진
J. 최근정세(2003.7~)
1) 제3차 총선 실시
ㅇ 2003.7.27 제3차 총선 실시 결과 인민당(CPP)이 73석, 훈신펙당(Funcinpec)이 26석, 삼렝시당(Sam
Rainsy)이 24석을 차지
- CPP당은 의석수에서 Funcinpec당과 Sam Rainsy당의 합계(50석)를 훨씬 넘는 총 73석을 획득하는 압승을
거두었으나, 단독정부 구성에 필요한 총 의석수의 2/3(82석) 확보에 실패
- [ 총선 결과 비교 ]
정당별 의석수 CPP Funcinpec Sam Rainsy
제2차 총선(1998.7) 64석 43석 15석
제3차 총선(2003.7) 73석 26석 24석
ㅇ 훈신펙과 삼랑시당은 연대하여 민주연합(Alliance of Democrats)을 결성, 훈센 총리 퇴진을 요구함에 따라 총선
이후 1년 가까이 신정부 구성이 지연
2) 제3차 총선 이후 정국 동향
ㅇ 2003.8 국가선거관리위원회(NEC), 제3차 총선 결과 공식발표
- 두 야당은 훈센 총리를 퇴진시키기 위해 연대, 민주연합(Alliance of Democrats) 결성 발표
ㅇ 2003.9 제3대 국회 개원식 개최(Chea Sim 상원의장 주재)
- CPP 소속 당선자 73명만 참석(야당 소속 의원전원 불참)
ㅇ 2003.10 제3대 국회의원 당선자 선서식 개최(Sihanouk 국왕 주재)
- 국회의원 당선자 123명 전원 참석
ㅇ 2003.11 시아누크 국왕 주재 3당 대표자회의에서 아래 신정부 구성원칙에 합의
- 차기 정부는 3당 연립정부로 구성(총리지명권은 CPP가 보유)
- 국회의장은 훈신펙당의 라나리드 총재로 하며, 부의장은 3인으로 구성
- 부총리는 4인으로 구성(CPP 2인, 야당 각 1명)
ㅇ 2003.12 민주연합측은 인민당(CPP)의 국회의장과 총리 동시표결 주장을 이유로 내세워 신정부 구성 논의를 결렬
- 이에 대해 국왕은 훈센 총리의 총리직 계속 수행 지지 입장을 표명하고, 신병 치료차 출국(중국 및 북한 체류)
ㅇ 2004.3월 이후 최근까지 인민당(CPP)과 제1야당인 훈신펙당간 소위 "2.5(two and a half) 권력분점"
방식을 전제로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실무협상 개최
* 2.5방식 : 인민당과 훈신펙당을 주축으로 하되, 삼랑시당 소속 일부인사가 훈신펙에 참여,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방식
3) 제3기 연립정부 구성 합의
ㅇ 2004.6월초 훈센 총리와 라나리드 왕자(훈신펙당 총재)간 제2차 여야 영수회동을 통하여 실무협상에서 합의되지 못한 아래
쟁점사항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
- 국회 원구성 및 연립정부 내각 인준안 동시 표결
- 치아심(CPP 총재)을 상원의장으로, 라나리드 훈신펙당 총재를 국회의장으로 추대
- 훈센(현 총리)을 정부수반으로 하는 CPP와 훈신펙당간 연립정부 구성
ㅇ 2004.6.26 연립정부 내각 구성을 위한 26개 부처 각료직 배분 및 연립정부 운영 방안에 대해 합의
- Co-Minister로 운영되는 상기 내무부, 국방부, 재경부의 3개 특별부처를 제외한 23개 일반부처 장관 중 CPP에서
14명, 훈신펙에서 9명 임명
CPP(14) Funcinpec(9)
① 관방부 ① 보건부
② 외교부 ② 농촌개발부
③ 기획부 ③ 공공사업교통부
④ 상무부 ④ 교육청소년체육부
⑤ 농림수산부 ⑤ 문화예술부
⑥ 국토관리부 ⑥ 노동부
⑦ 환경부 ⑦ 여성부
⑧ 산업자원부 ⑧ 종교부
⑨ 수자원기상부 ⑨ 관광부
⑩ 사회복지부
⑪ 체신부
⑫ 공보부
⑬ 법무부
⑭ 대의회 및 감찰부
ㅇ 2004.6.30 국회 원구성 및 내각 인준안 동시표결에 필요한 헌법규정 채택을 위해 임시국회 개원에 합의
ㅇ 상기 여야간 "협력에 관한 합의의정서(Protocol of Agreement on Cooperation)"에
따라, 2004.7.8 소집된 임시국회에서 국회 원구성 및 내각 인준안 동시표결에 관한 헌법절차 마련
- 양당 소속 전체의원 99명중 96명 참석(삼랑시당 소속 의원 24명은 전원 불참), 참석의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통과
ㅇ 2004.7.15 국회 원구성 및 내각 인준안 국회 통과, 제3대 국회 및 제3기 연립정부 공식 출범
- 총 26개 부처 및 2개의 외청으로 구성
ㅇ 2004.7.16 제3기 연립정부의 첫 각의 소집, 향후 4년간 부패퇴지 및 개혁을 통한 경제성장 및 빈곤타파에 주안점을
둔 소위 "사각전략(Rectangular Strategy)"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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